엠마 팍 개인전, 서울 – 공간 서로 (2024년 11월 2일 – 23일)
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
나? 잘 모르겠어, 더 이상 모르겠어. 아마도 내가 찾고자 하는 것, 이 선과 형상들의 유희 속에서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 여전히 생각지 못하고 있는 걸지도 몰라. 아마도 한 획, 한 획을 그려내면서, 언젠가는 알게 될지도… 누가 알 수 있을까… 아니면 영원히 모를지도 몰라. 왜냐하면, 시간은 아직 우리에게 확실한 지점이나 뚜렷한 흔적을 남기지 않았거든. 그저 몇몇 자국들이 남았을 뿐. 청소년기 그리고 사랑에서의 처음이자 큰 패배의 상처들, 또한 우리 “실험(욕망 속 경험 l’expériment)” 속의 크고 작은 실패들, 마치 뒤라스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이상한 질문이야.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 마음속 미로에서 나는 더듬더듬 나아가고 있다는 거야. 나는 이리저리 거닐고, 공상에 잠기고, 지루함을 느끼고, 고갈되고, 가라앉고, 우울해하고, 그리고 너무 자주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어져. 시간이 더 빨리 흐르고, 실크 같은 천처럼 내 위로 미끄러지듯 스쳐 지나가서 나를 무감각해지게 만들기를. 하지만 내게 다가오는 모든 것, 나를 움직이는 이 모든 일상 속의 작은 혼란들과, 때로는 작은 꿈에서 단순한 환상으로, 장엄한 계획 혹은 창조적이며 숭고하기까지 한 전망들로 나를 일으켜 세우는 이 내면의 피난처, 이것들을 이룩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있을까?
사실 나는 이제 무엇도 두렵진 않아. 국경의 평원을 따라 뻗어 있는 미사일로 무장한 방어 거점이나 철조망에 둘러 싸인 산악 지역, 국경선의 잔인한 무인지대 그리고 비극적인 비무장지대도. 그리고 서울이라는 이 도시의 만남에서 오는 놀라움과 신비도 마찬가지야. 서울은 마치 새로운 런던처럼 소리를 내고, 연기를 피우며, 소리로 가득 차 있어. 이 도시의 동맥과 수백만의 기계적 적혈구, 때로는 숨막히는 호흡, 밤낮으로 큰 강 너머에서 울려 퍼지는 이 배경 소리까지. 나는 이 섬들에서 망각을 시도하고, 미묘한 음으로 시간을 붙잡고 감정을 포착하고, 누적된 감정의 상태에 밑줄을 긋고 형상을 만들어내며, 섬세함의 형태로 폭력을 좌절시키려고 애써보고 있어. 그렇지만 이제는 다시 나를 찾아야만 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맴도는 모든 것을 다 말하기란 불가능하니까..
모든 것(Tout)을 말할 수 없다는 것이 곧 말할 수 없는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말할 수 없음’이란 말하기 불가능한 것, 번역할 수 없는 불안, 트라우마나 절망의 언어로 담아낼 수 없는 고통의 막다른 길, 무의미함 속에서 비명과 외침, 그리고 머릿속에서 울리는 목소리들 너머로 전해질 수 있는, 주변 사람들은 결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고통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결국,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그 ‘실재’라는 것은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될 수 없는, 완전히 언어로 담아낼 수 없는 것임을 의미한다.
그러면 우리에게 무엇이 남을까? 불쌍한 ‘말하는 존재들'(라캉의 표현), 단지 말로 이루어진 존재들인 우리는, 우리의 감각의 향기와 이미지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것일까?
자아, 신체, 감정 모두가 언어에서 태어나고, 우리가 언어를 통해 말하는 주체로서 세상에 들어섬으로써 형성된다.
그렇다면 말할 수 없는 것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도망칠 것인가? 피할 것인가? 아니면 더욱 깊이 얽매이기 위해 미쳐버릴 것인가? 아니면 신중히 접근해 감각과 감정의 실타래를 엮어보려는 시도를 할 것인가? 고독을 덜 느낄 수 있도록 꿈과 생각, 욕망의 외투를 엮어낼 것인가, 우리를 둘러싼 불가능성에 맞서기 위해서: 죽음, 여성, 아버지, 완전한 쾌락.
우리에게는 길을 만드는 나침반이 필요하다. 세 가지 상호 보완적이고 소통하는 공간으로 안내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프로이트의 지형도와 우리의 정신적 거처에 걸맞은 세 영역: 철저하고 비타협적이며 규범과 규칙에 집착하는 초자아, 나르시시즘으로 빛나면서도 서툴게 자신을 제어하고 안도하려는 자아, 끝없는 쾌락 충동의 우물 같은 그것, 지하 깊은 곳. 더 나아가, 이 모든 것이 오늘날의 일상과 ‘함께 살아가기’ 혹은 ‘함께 존재하기’를 이루는 것들을 탐구한다: 우리의 개인적인 신앙, 광고의 우상화, 미디어의 스타화, 소셜 미디어에 대한 중독, 사물 숭배.
그래, 내가 그리고 싶은 건 그림과 창작물, 가구와 구조물 너머로 우리 각자 내면에 깃들어 있는 미묘하고 뜻밖인 것들의 생태, 파괴적이고 오염된 도시성에 대항하는 생명력을 일깨우는 것이다. 결코 완성될 수 없는 창조의 여정을 통해서, 그리고 (이 혼란하고 위험한 시대에) 사회적 연대에 대한 또 다른 증언 방식, 모든 개성을 존중하고 규범화하려는 시도에 굴복하지 않는 방식이 아닐까?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하는가? 나와 함께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말할 수 없는 것의 공간으로 들어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장 뤽 가스파르(Jean-Luc GASPARD), 정신분석가,
2024년 10월, 프랑스